네가 떠나던 그 시간에 내 마음인듯 무섭게 비가 내렸다
이튼날부터는 거짓말 처럼 화창한 날이다가
네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나는 그날은 태풍이 올라 오고 하늘마저 슬퍼하는듯 또 비가 내리더라.
나는 그것이 네 눈물인듯 싶어 더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네가 아픈 동안 나는 새끼손까락의 힘 만큼도 도와 줄 수 없어서
내내 애간장이 녹았단다
그것과 상관없이 너는 지나치리만큼 침착했고
남겨지는 사람들을 위한 교통정리까지...왜 그렇게 까지 했니...
내버려 둬도 그들이 다 알아서 할 일들을...
네가 내 아들의 짝으로 내 며느리가 된 순간부터
내가 무슨 복에 너같은 아이를 자식으로 맞이했을까 늘 흐믓했었다
그날부터 너는 며느리가 아니고 그냥 `보현이` 였었다.
있는 그대로의 네가 그저 행복하게 지내기만을 바라며 티끌만큼이라도 네가 마음 쓰는 일은
안만들어야지...
네가 편안해야 내 아들도 편안하고
또 네가 행복해야 내 아들도 행복할테니 나는 그냥 그것만 바랬다
내 바램대로 부부이자 친구로 때로는 오누이처럼
참 그림같이 이쁘게도 살더니
성미가 그리 급하지도 않은 네가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느냐
나는 집에서도 눈을 둘데가 없구나
도처에 네가 있어서...
내가 좋아할만 한 것들을 잘도 알아서 무심한 척 하나씩 사다준 것들이
어디에서고 나를 보고 있다.
문구류에 진심인 나에게 신기한 필기구가 보이면 내 생각이 나서 사왔다고...
내게 와서 뭔가 필요하다 싶으면 밥주걱 한 개 국자 한 개 냄비 한 개 뭐 그런식으로 사소한 것이어도
너의 진심이 담긴 것을 아니까 늘 기꺼웠다.
아직 포장도 벗기지 않은 덧버선이며 앞으로 일 년도 더 쓸 화장품에 해마다 내게 해줬던 생일 선물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나에게 주는 모든 것들은 최고 좋은 것만을 골라 온다는 것을...
네가 아픈 몇달 동안에 석원이가 아주 단단해 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알던 내 품안에 있던 그 아들이 이미 아니더라.
너의 남편으로 살며 네가 아주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 같다.
네가 마지막까지도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던 그 아이가 아주 단단한 어른이어서
아마도 너를 온전히 떠나 보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혼자만의 시간도 잘 견디며 이겨내어 씩씩해지리라 믿는다.
보현아..이제 석원이 걱정은 하지 마라
사랑하는 보현아.
이제 너를 보낸다
더는 아프지 말고 네가 원하던 곳으로 가벼히 가거라
다음 생이 있다면 내가 너를 꼭 알아 볼 것이다
그 때도 어떤 인연이든 아주 귀한 사람으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쁜 보현아
안
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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