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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으로 돌아 가는 길목
가족

거짓말

by 풀 한 포기 2023. 7. 25.

 
겨울의 끝자락
어쩌면 봄이 저 멀리 올 것 도 같은 그런 날쯤에 내 생일이 들어 있다.
지난 내 생일도 여늬 때와 다름없이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품고 다가 왔고
아이들 또한 숙제처럼일지는 모르지만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내게로 왔다
언제나 기꺼운 마음으로 셀프 생일상을 차리고 
핑곗김에 아이들에게 맛난 것 해먹이려고 동분서주하며 그날을 보냈다.
 
아들과 며느리는 3주쯤 후에 스페인 여행을 가기로 예약했다며 조금 들뜬듯 말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올라 가고 얘기했던 여행일이 다가 오는듯해서 
언제 떠나느냐 전화를 했더니... 여행을 취소 했다고,
그렇다면 그것은 좋은 일은 아닐 것이고 무슨 변수가 생겼다는 것인데,
채근하면 물으니 `보현이가 아파요. 좀 많이...`
 
얼마전 부터 몸이 좀 이상해서 비뇨기과로 산부인과로 다니다가
뭔가 명쾌하지 않고 여행을 앞두고 있으니 제대로 체크하자 한 것이 그만.
위암 말기, 그것도 위의 바깥조직에서 발현한 것이어서 어떤 내시경에도 발견 되지 않아
그간의 건강검진에서 알 수 없었다고...
이미 주변 장기와 복막에 까지 전이된 상태인데 병원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며
아마도 일반 검진으로는 알아 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하더란다.
전이된 다른 장기의 이상으로 병원을 다니다가 그 원인을 알아 낸 것.
 
아들은 국내에서 그래도 임상경험이 제일 많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하기로 했다고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항암이 들으면 부위를 축소시켜 수술할 수도 있고...
미국과 일본의 표적치료를 받으려고 유전자 검사도 해서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이게 무슨,
이건 아니지, 분명 꿈일꺼야
 
그래도  며느리는 마음을 추스려 항암을 시작했고
이것 저것 맞는 항암제를 찾아 애를 써보며 두달 쯤 지나 
지난 5월 1일 검사와 항암을 위해 입원을 했다가 그대로 두달 간을 병원에 있게 된 것.
처음 금식은 검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급격히 진행된 병세로 복수가 차고 장이 마비가 오고
그러면서 두 달 가까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 콧줄을 넣어 위액을 빼내고 각종 주사제로 연명하게 된 것.
 
요즘 시국에 병원 면회도 안되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그저 속수무책.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어른들이 내가 대신...이라하던 말이 진심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지난해 내가 유방암이라 할때도 그저 덤덤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건 얘기가 다르다.
너무 애닯아하다 보니 나는 온몸에 포진도 생기고 여기 저기 몸이 견디지 못하는 증세가 나타나더라.
그래도 권위있는 의사를 만났고 현대의학의 힘에 기대를 걸었는데
지난 6월 후반에 최종적으로 어느 항암도 듣지 않고 유전자도 맞는게 없어 표적치료도 못하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게 없으니 호스피스병동을 알아봐서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들 혼자 그 얘길 듣고 젊디 젊은 아이를 호스피스병동에 보내려고 알아 보는 심정은 어떠했을지
늘 괜찮다고 하던 그 거짓말도 못하고...
보현이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니 가정간호하는 병원을 알아 봐서 집에 데려 갈 수 있으면 
`엄마, 그때 우리 보현이 보러 오세요`그러면서 아들이 처음 울더라.
그렇게 보고 싶어도 참고 참았는데 이제 겨우 두달 입원 끝에 집으로 오면 보러 오라니,
 
그래도 다행히 근처 카토릭성모병원에서 간정간호가 된다해서 호스피스병동은 아니고 집으로 데려와서
아들이 재택 그것도 단축근무를 신청하고 병원에서 간호사가 일주일에 세 번 방문하는 가정간호를 하고 있다
친정엄마도 계신데 그 애닯아 하는 마음이 어떠할지,
그에 비해 나는 그저 열두째라서 마음으로라도 한 발짝 비껴 있으려니 더더욱 참담하다.
남편과 가서 그 아이를 보고  , 그날 남편은 아들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해서
그 다음 부터는 나 혼자만 가서 보고 있다.
 
딸아이가 가까이 살아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고
마음으로야 내가 가서 뭐든지 해주고 싶지만 아무 것도 못먹으니 밥도 해줄 수 없다.
내 음식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지난해 내가 션찮아서 생일상도 제대로 못차려 줘서 올해에는 제대로 해주려했는데 
그 생일도 병원에서 보내고 이제 다시는 내가 해주는 밥을 못먹는다
 
이 여름 내마음을 닮은듯 하늘은 연일 비를 쏟아 붓고 
늘 나를 보러 아이들이 오던 길을 되집어 내가 며느리를 보러 가며
`이제 다시는 네가 이길을 따라 나를 보러 오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에
창밖의 풍경이 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
 
며느리는 저에게 그렇게 잘해주셨는데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느냐고
손주도 못안겨 드렸는데 아들 홀아비 만들게 생겼으니,
그 와중에도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아이는 침착하고 게다가 우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어머니 너무 빨라요...그동안 정말 행복했어요`그러면서 그 큰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라
그래 참 너무 빠르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집에 온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그나마 아이는 비교적 잘 견뎌 주고 있다
호스피스로 넘어 가며 각종 주사제가 반이하로 줄었지만
아들이 여기 저기 어렵게 구해서 병원에서 주던 것만큼 채워 주고 있고
그저 하루라도 더 붙잡고 싶고 하루라도 더 집에 있게 하려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통증이 심해지면 가정간호가 어렵다해서 그것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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