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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으로 돌아 가는 길목
좋아하는 것

빗줄기를 바라 보며

by 풀 한 포기 2023. 6. 29.

여린 수국가지 하나 비바람에 꺾인 것을
차마 그냥 두지 못해 안에 들여 하루라도 더 보려고 작은 꽃병에 꽂았다.
 
한 이틀 수긋하더니 다시 비가 내린다
비 내리기 전 아침 나는 일찍 그간 미뤄 두었던 연산홍 전지를 조금 했고
남편은 진입로 풀작업을 했다.
그리운 이들이 찾아 오는 길이라서 늘 단정하기를 바라는데 한동안 그냥 두었더니
심란해서 남편이 작정을 하고 길로 뻗어 나온 나뭇가지도 자르고
밭쪽으로는 호랭이 새끼치게 생긴 풀들도 정리를 했다.
 
이렇게 말끔해진 길에 그렇게 기다리던 사람이 다시 오지 못해도 
나는 늘 이 자리에 있게 될 것을 알고 있다.
 
 

 
딸에게 줄 삼베이불을 마름질해서 만들어 놓고
간단한 수라도 놓으려고 밑그림을 그렸다
 
 

 
수를 놓다 보니 오래 보관하고 있던 삼베라서 조금 삭아 미어 지는 곳이 있더라.
천을 덧대어 꿰매면서 밋밋하니 분취 한 줄기 수를 놓았다.
 
 

 
하필 수를 반쯤은 놓은 이곳도 수틀을 끼웠다 뺐다 하다 보니 
바탕천이 미어지는 곳이 생겼는데
뜯어 내고 다시 만들까 하다가 여기까지 진행한 것이 아까워서 
결국에는 밑에 한겹 덧대어서 보강을 했다.
 
 

 
그나마 완성해 놓고 보니 낡으면 낡은대로 그 분위기는 괜찮아서
딸에게 주며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반품하라 일렀다 
 
비 오는 밖을 내다 보며 마음수양하듯 수를 놓았다.
오랫만에 잡아 보는 바늘이 자꾸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그간 노안은 더 심해져서 돗수 높은 돋보기를 쓰고 들여다 보았다.
바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시간에 시간 보내기로는 이보다 좋은 게 없기는 하지만
그야말로 이제는  나이 들어 너무 오래 앉아 하는 일이 힘에 부친다.
 
자수는 늘 곁에 두고 해야 실력이 느는데
어쩌다 한번 하려니 이제 좀 손에 익는다 싶으면 끝이 난다.
그러니 항상 수를 놓는 솜씨는 일천하다
 
이 자수실도 며느리가 여러 해 전 내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다.
나는 자수실 몇 가지...를 원했는데 수틀부터 교본까지 일습을 장만해 주어서
어쩌다 한번이지만 요긴하게 쓰고 있다.
많이 사 준 수실은 아마도 내 생전에 다 소진하지는 못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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