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기대 사는 고양이들이 대략 열 일곱 마리 정도 되는데
언제 부터 얘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기로 했다.
때 되면 꼬박 꼬박 밥만 먹으러 오는 녀석.
사 나흘 간격으로 가끔 나타나는 녀석도 있고
집 울 안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언저리에 사는 애들도 있고
대문안까지 들어 와 내 집이다 그러면서 편히 지내는 애들도 있는데
그 모두가 지 맘대로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기 때문에
어느날 이름 불러 가까이 지내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애면글면 마음이 너무 쓰여서 그저 무심하게 오는 애들 밥주고
물그릇 챙기고 어디 아프다 싶으면 손에 잡히는 애들은 치료도 해주고...
아무리 안타까워도 절대로 손을 못대게 하는 애들은 지 팔자니 할 수 없고 ...
이렇게 편하게 생각하게 된지는 얼마 안되지만 어쨋든 마음은 많이 홀가분해졌다.
요즘 그 아이들 중에 한녀석 유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랑이`가 새끼를 낳았다
배가 불러 오니 혹여 지 편한데로 들어가 몸풀으라고 여기 저기
박스같은 거로 은신처 비슷하게 놓아 주고
집앞 툇마루 밑에도 작은 나무 집을 놓아 줬는데
어느날 보니 작은 나무집에 들어가 출산을 했더라 기특하게,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 불안해 할까 봐 종이 박스로 앞을 가려 편히 있게 했더니
여지껏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고양이는 대부분 출산 후 3~4일 후면 새끼를 다른곳으로 옮기는 습성이 있는데
이 녀석은 그곳이 편한지 무던하다.
그러다가 다른 고양이도 10여일 간격으로 새끼를 낳았는데
초산이라 서툴기도 하고 출산 며칠 후 새끼 한마리를 잃었다.
다 검정색인데 딱 한 마리 흰색에 가까운 아이가 죽어 있어서 꺼내 묻어 주었는데
이튼날 보니 지 새끼 보다 훨씬 큰 흰 새끼고양이를 떡하니 품고 있더라는..
수소문을 해보니 랑이 새끼중에 흰색 한마리를 데려 왔던 것.
지들 맘이니 그냥 두고 보자 하고 있는데
그 다음날 아예 새끼를 모두 데리고 랑이집으로 합가를 했더라...
다 좋은데 그 집이 진짜 조그만해서 어미 두 마리에 새끼까지는 무리.
그러다 새끼들 다 깔리게 생겨 옆에다 다른 박스 하나 옮겨 놓고 분가를 시도 했으나
새끼에 손만 대도 난리 난리 .
옆에 내놓으면 순식간에 다시 물고 들어가고..에라 늬들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그러면서 어쨋든 두 마리 어미가 새끼 다섯마리를 공동 육아 하고 있는 중에
엊그제 외출에서 돌아 와 보니 갓 낳은 아주 어린 애기 고양이 두마리가 느닺없이 또 있더라는
가만 보니 또 다른 한 녀석이 그 두마리의 에미인데 여기 저기 편안한 집 다 놔두고
그 비좁은 집으로 또 합가를 했다.
이번에는 정말 안되겠다 싶어 일단 그중 늦게 온 애기 두마리를 옆으로 꺼내 놓으니 순식간에 물고 들어가서
이번에는 기왕에 있던 조금 자란 애들 다섯 마리를 옆으로 꺼내 놓으니
랑이가 저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즈이 새끼 있는 박스로 가서 벌렁 드러 눕더라
그 다음 부터는 새끼들도 제자리에 있고 먼저 합가한 녀석도 랑이를 따라 옆에 터를 잡고
저 윗 사진 중 왼쪽이 먼저 지내던 곳
맨 나중에 온 아이가 애기 고양이랑 남아 있다.
어미 두 마리와 새끼 다섯 마리 ㅎㅎ
그게 끝이었냐...?
오늘 보니 왼쪽 집에 있던 고양이가 그 어린 새끼를 데리고 따라서 오른쪽 박스로 이사를 하고
이모양으로 엉겨 있다는 것.
어미 세 마리 새끼 일곱 마리..
이미 많이 자란 새끼와 열배는 차이 나는 저 어린 것들이 과연 함께 둬도 되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니 랑이가 거의 독박 육아를 하고
나머지 두 놈은 깍뚜기 같더라는...
낮에 장에 가서 닭한 마리 사다 삶아 핑계는 미레를 준다였지만
랑이를 따로 안으로 들여 놓아 실컥 먹게 했다.
힘든지 저렇게 떡실신으로 누워 있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랑이의 관대함으로 에미 노릇에 몹시 서툰 두 마리 고양이가 거저 먹고 있는 중.
사람 세상이나 짐승의 세상이나 뼈빠지게 고생하는 쪽도 있고
그저 눈찌껏 요령껏 슬그머니 제 누릴 것 실컷 누리는 족속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여러 해 고양이를 보아 와도 이런 경우 는 처음.
神猫한지 奇猫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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