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2월호에 게재된 친구의 글이다
그 친구의 글 소재가 되어 글의 초반부에 등장한게 나의 이야기여서
여기 옮긴다
몇년전에 글쓴 친구의 부군인 사진가 `김녕만`님이
우리집에 왔다가 찍어 준 내 텃밭의 모습
제자리가 꽃자리 윤세영 (尹世鈴)
낙향한 친구의 꽃밭에는 과꽃, 분꽃, 맨드라미, 채송화 같이 어릴 적 시골에서 흔하게 봤던 꽃들이 사철 피고 진다.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오래 된 흑백사진 속 친구들의 얼굴마냥 친근하고 정겨운 꽃들이다. 그 아래로 제법 넓은 밭에서는 감자, 상추, 오이, 가지, 호박 등이 단정하게 가른 가르마처럼 반듯하게 구획을 나누어 부지런하게 잘도 자란다. 알록달록 핀 윗마당의 꽃들도 예쁘지만 온통 싱싱한 초록빛을 뿜어내는 정갈한 채소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싱그럽다. 그런데 거기에 복병이 숨어 있다. 끊임없이 어디로든 뻗어나가고 싶은 욕망에 들끓는 억센 풀들이 뙤약볕 아래 숨을 죽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밭에서 눈을 떼고 등을 돌리자마자 금세 또 고개를 내미는 풀과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내 친구의 일진일퇴는 그렇게 한여름 내내 장군 멍군 계속된다. 그러니 겨울이 기다려진다는 친구의 푸념이 나올 만하다. 겨울이 와야 뜨거운 여름 내내 무서운 기세로 그녀를 괴롭힌 풀과의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찌감치 시골에 땅을 장만해놓고 오매불망 시골 생활을 기다려온 친구가 온갖 것들이 풍요롭게 자라는 계절 대신 차라리 겨울을 기다릴 정도로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에 두 손 든 것이다. 친구를 힘들게 하는 잡초에 나 또한 미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던 차에 우연하게 주자(朱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약장제거무비초(若將除去無非草)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
‘베어버리자면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라는 글귀다. 얼른 적어두었다가 친구의 시골집에 놀러갔을 때 “저것들도 꽃이려니 하고 너무 힘 빼지마.”라고 말하니 친구가 빙그레 웃는다. 이젠 무조건 꽃이라 하여 우대하고 풀을 미워하던 단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오히려 맹렬하게 살아남겠다고 모질게 버티는 질긴 생명력에 연민을 갖게 되었다면서 풀과 꽃의 경계를 새롭게 세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꽃도 풀이나 다름없더라.” 친구는 ‘제자리’에 방점을 찍었다. 아무리 꽃을 좋아해도 엉뚱하게 채소밭 한가운데에서 삐져나오면 뽑아버리게 되더라고 했다. 사실 인정사정없이 잡초를 제거하는 까닭도 남의 자리를 침범하기 때문이었으니 꽃이라 해도 채소밭에서 자라면 잡초와 마찬가지라는 것. 그러므로 ‘제가 꽃이라 하여 저 예쁜 거 하나 믿고 아무 데나 발을 뻗었다’가는 잡초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것도 책이 될까요?” 몇 년 전, 전북 무주의 상곡보건진료소장이 시골 어르신들의 이야기들을 묶어 책을 만들고 싶다고 내게 의논을 해왔다.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한번 뿌리 내린 곳에서 떠나지 못하고 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마을 노인들의 기막히고 순박한 사연을 모아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책이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받아 본 원고는 눈물겹기도 하고 저절로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진솔하고 소박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런데 책이 나온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마을 어르신들의 일상을 글과 사진으로 전해주곤 한다. 실은 그분도 그곳 출신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포내리에서 무주읍내로 진출하게 되었을 때 가난한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고 말하지만 전주에서 간호과를 졸업한 후 결국 포내리의 보건진료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붙박이처럼 벌써 25년 동안 그곳에서 고향어르신들과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카카오 톡으로 그곳의 풍경과 사연을 보내왔다. 왕진을 다니다가 눈에 띄는 담 밑에 봉선화, 고추를 말리는 시골집 마당, 고샅길 등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곤 하는데 이번에는 한 할아버지의 방안에 팩스가 놓여 있는 사진과 함께 팩스로 들어온 글을 찍어서 보냈다. “아버지, 거기도 날씨가 흐려요? 여기는 비는 안 오는데 잔뜩 흐렸어요. 제가 오늘 커피 사서 보냈어요.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거예요. 돼지등뼈는 고아서 드셨어요? 맛있어요? 소뼈 고아서 드시는 게 나은데... 감기 조심하시고 식사 잘 해서 드시고 보일러도 따듯하게 돌리고 주무세요. 잘 있어요!! 또 편지 쓸게요.^^”
혼자 사는 아버지가 귀가 어두워 전화통화가 불가능하자 출가한 딸들이 팩스를 놓아드리고 이렇게 글로 안부를 묻는다는 거였다. 어떻게든 연로한 아버지와 소통하려고 애쓰는 딸들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내게 전해지는, 천일야화처럼 계속 이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별거 아닌 이야기들은 그러나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나 같은 도시인에게는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주고 치유를 해준다. 또한 투박하고 거친 자리여도 튼실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분들의 모습은 잡초같이 질기면서 동시에 꽃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은 대지가 잠든 겨울이다. 그러나 곧 새 봄이 오면 내 친구도, 무주의 어르신들도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굴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남의 자리를 넘보는 것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하리라. ‘베어버리자면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라면 애당초 꽃과 풀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저마다 분수를 아는 제자리가 아름다운 꽃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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