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저녁이면 아주 숙연한 자세로
굳건한 믿음과 함께 꼭 행하는 일이 있다.
딸아이가 퇴근을 해서
함께 저녁을 먹고 조금 쉬고 있으려면
딸이 슬그머니 일어나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
이때부터 나는 드디어 오늘도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하는 심정으로
마음부터 준비를 한다.
본시 몸을 아끼지도 않을 뿐더러
외양에 별 관심도 없는 나는 이미 손도 너무 거칠어졌고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더러 손마디도 쑤시는듯도 하긴한데
어디서 파라핀 팩이 효과가 좋다는 말을 들었는지
딸이 저녁마다 물을 끓여
나를 강제로 파라핀 녹인 통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시켜
나중에 식으면 허연 장갑같이 굳은 파라핀을 빼내곤 한다.
근데 그것이
중국무술에 철사장인가 뭐 그거처럼
손을 단련시키려고 뜨거운 모래속에 손가락을 펴서 넣었다 뺐다하는 것을 연상시켜
나는 매번 이 물이 얼마나 뜨거울까...
겁먹은채 손을 넣곤 한다
딸은 믿어...나를 믿고 넣으라구...요.
그러지만 ㅎㅎ
이건 당췌 면역이 안생긴다.
그러나.
효도 당하는 자의 자세는
절대로 거부를 해서는 안되고
없는 효과도 있는 척 해야하며
더러는 감격스러운 표정도 지어야 한다는 것.
어쩌면 계속 될지도 모르는
딸내미의 효심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근데 나는
그 뜨거운 파라핀 물이 정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