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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으로 돌아 가는 길목
일상의 부스러기

눈물의 결혼식

by 풀 한 포기 2008. 6. 20.

 

 

 

 

해묵은 결혼식 사진 

앨범 귀퉁이에 붙어 있는 이 사진을

그간 몇번이나 들춰 봤는지....

하나 뿐인 딸의 혼인을 생전에 꼭 보고 싶다는 친정아버지의 간청에

각중에..느닺없이 ..그야말로 졸지에

날을 잡아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받았다.

 

 

 

하시던 사업이 기울면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투병을 하시던중

혼기에 다다른 딸을 그냥 두고 가시는게 못내 아쉬웠던지

날을 정해 놓고는 달력을 올려다 보시며

그날까지 내가 살 수 있을까..? 라고 혼잣말을 하시곤 하던 그 모습이

결혼기념일이 되면 늘상 따라붙어

슬픔의 색이 더 많은 그런 날이 되어 버렸다.

 

 

결혼식 전날에 임종을 맞이 하는 줄 알고 꼬박 밤을 새운 나는

아버지도 참석 못하시는 결혼식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갈피도 못잡겠고,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이미 혼배 공시를 하고 나면

설령 부모상을 당해도 해야하는 교회법이 있어서 꼭 해야 한다니,

요즘처럼 결혼을 앞둔 신부들이 하는 무슨 피부미용이니 뭐니 그런거 몽땅 생략하고

친구가 직접 만들어준 부케에  신부화장에

그렇게 결혼식을 올렸었다

 

 

 

 

그날 성당에 가득한 친척들과

엄마 아버지의 친구분들

그리고 내친구들

모두 모두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울기로 한다면야 나보다 더 울어야 할 사람이 있었을까만

참고 참고 또 참아  절대로 눈물 한방울도 내비치지 않은 나는 참 독한 딸이었다.

결혼식만하고 혼자 남게 되는 친정엄마가 안스러워 당분간은

시댁에 안들어가는 조건을 허락해주신 그댁 어들들 보기에도 그렇고

우리집 사정이야 그렇다쳐도

신혼여행마저 아주 생략할 수가 없어서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온양온천에서 결혼식을 하고는 유성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갔으니 ..참.

 

짧은 여행을 가서도 언제 무슨일이 있을지 몰라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고

그렇게 집에 돌아오고 대충 장만한 혼수용품들을 시댁으로 옮기고 나서

한숨돌리려 할때 아버지께서는 이젠 됐다..그러셨는지 결혼식후 나흘만에 돌아 가셨다.

 

살아가면서

늘 달콤하지만은 않은게 생활인지라

순간 순간 힘겨운 일에 부딪힐때마다

내 결혼식이 마지막 소원이시던 아버지의 사랑으로

견디며 그렇게 살아왔었다.

 

혼수 상태로 직접 보지도 못한 딸의 결혼식은 지난 17일이었고

그 딸을 보내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은 바로 내일 21일이다.

 

결혼기념일과 아버지의 기일

이렇게 맞물려 있는 기쁨과 슬픔의 기억.

인생이 다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기쁨으로만 가득차지도 않고

또는 슬픔만 있는것도 아닌

그 모든것이 혼재된...

 

아직도 우리 남편에게 가장 큰 협박은

'나중에 울 아버지한테 다 이를꺼야' 라고 하는 말이니

아버지의 뒷빽이 이 얼마나 든든한가.

내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장 큰이유가 이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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