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김재진
한 그루 나무이고 싶습니다.
메밀꽃 자욱한 봉평 쯤에서
길 묻는 한 사람 나그네이고 싶습니다.
딸랑거리며 지나가는 달구지 따라
눈 속에 밟힐 듯한 길을 느끼며
걷다간 쉬고,걷다간 쉬고 하는
햇빛이고 싶습니다
가끔은 멍석에 누워
고추처럼 빨갛게 일광욕하거나
해금강 바라뵈는 몽돌밭을 지나는
소금끼 섞인 바람이고 싶습니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이
구두 아래 바지락거리는 이맘 때
허수아비처럼 팔을 벌린 내 마음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목화
목화열매
배초향
가을을 기다리는것이 어찌 나 뿐이겠는가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는지 어쨋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꽃밭에는
가을을 기다리는 꽃망울이 하나 가득이다.
나는 이 국화가 피기를 기다리고
이 아이는 가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두를 기다림에 들뜨게한 가을이
바로 코앞이니
너무 애닯아 하지 않아도 되겠다.
과꽃
수염며느리밥풀
꽃가지
이질풀
맨드라미
이 기다림은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끝이라고
잠자리 한 마리
방점을 찍듯 맞춤한 자리를 찾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이쯤에서는
나도 마음갈피 잘 추스려
고요히 머물 일이다.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