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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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마흔아홉 이라 표현한 지난달 편집장의 글에 대해 유난히 반응이 많았다. 여자 나이 마흔아홉이 만천하에 공개해도 좋을 만큼 당당한 나이인 줄 몰랐다며 이제까지 나이에 주눅 들었던 독자들의 애정 어린 호응이 있었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월이 흐르면 공평하게 나이를 먹어가게 되어 있는 일에 그렇게 예민한 줄을 미처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나이를 먹어가는 일이 그렇게 비극적인 일은 아니라고, 아니 오히려 하루하루를 살아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 될 일이라고 믿고 있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에 대해, 타인에 대해 관대해지는 것도 즐겁고, 또한 세상이치를 책으로서가 아니라 몸으로 터득하게 되는 것도 스스로 대견하다. 또 다른 변화 중 하나가 주변에서 자꾸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상이다. 친구들이나 친척들 중에 아직은 겨우 50대인지라 시골에 주말농장을 마련하여 한 다리만 걸치고 있지만 조만간 은퇴하면 낙향하겠다며 그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지인들이 꽤 있다. 지난 주말에는 그런 친구의 시골집에 친한 친구 넷이 모여 밤새 웃고 떠들며 무박2일을 보냈다. 인가와 멀찌감치 떨어진 깊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그곳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습게도 밤이 얼마나 깜깜한가였다. 오로지 별빛만 있는 그곳에서 문자 그대로 칠흑 같은 밤, 바로 코앞도 보이지 않는 밤에 나는 지금까지 밤의 어두움에 대해서 대충만 알고 있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이 진짜 어둡다는 단순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의 허술함을 동시에 실감한 것이다.
자연이 깨닫게 해주는 것은 모두 체험으로 얻어지는 것이기에 쉽고 정직하게 진리와 상통하는 것 같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쏟아내는 지식보다 더 단순명료하게 꽂히는 자연의 가르침이 복잡한 삶에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람이 불면 스스로 먼저 낮게 눕는 한 포기의 풀에서,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나뭇잎을 미련 없이 떨구어 낼 줄 아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 자연의 지혜를 읽는다.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당연한 이치가, 나의 부름에 대한 이러한 자연의 정직한 대답이 세상살이에서 원칙이 통하지 않아 마음을 다쳤을 때 은근한 위로가 된다. 이 세상에서 살다갔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어서 주말농장을 마련했다는 내 친구. 모두들 무언가 흔적을 남기겠다고 억지를 쓰는 데에 질려서 죽으면 납골당조차 싫고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나로서는 ‘역시 우리는 친구’임을 공감했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치열하되 사라져야 하는 순간에는 발자국 소리조차 없이 완벽하게 사라지기, 이것이 나의 소망이다.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11월. 그 무성하던 초록의 기억과 화려하던 가을의 추억에 냉정하게 이별을 고하고 있지만 나무는 겨울을 이기면 지난해의 그 잎은 아니되 새순을 틔울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순환을 계속하고 우리는 그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그것은 결국 모든 껍질을 벗겨낸 순수한 나로 돌아가는 일이다. 글 윤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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