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 풍경

골짜기는 안개에 싸여.....

풀 한 포기 2013. 3. 10. 21:12

 

안개에 싸인것이

어디 파리뿐이겠는가....

초여름을 방불케하던 주말의 날씨는

아침을 안개로 맞이하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지척을 분간 못할 정도의 짙은 안개.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이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건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뒤에서는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여럿인 것도 혼자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뒤에 숨는 것은 다르다

류시화, <안개 속에 숨다>

 

 

 

 

햇살이 번지며 안개가 걷힌 골짜기는

뾰족 올라오는 수선화의 새순처럼

그렇게 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별꽃도 눈꼽만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벌써 냉이도 꽃을 피우고 있으니

봄이 아니라고 말 할 수는 정말 없겠다.